어두운 터널에 들어갈 때 우린 눈을 감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고막엔 정적이 휩싸이다가 다시 환한 세상이 눈에 들어와 활기차다못해 화려한(?) 일상이 시작되는데, 하루가 다르게 가을 빛이 내 몸에 들어옵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다가오지만 치유의 힘과 긍정의 사고로 맞이해야겠지요. 길섶에 피어있던 작은 들꽃도 이젠 조금씩 이즈러져 가는데, 그 또한 반복되는 수많은 일상들. 그럼에도 우린 뭔가 새로움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죠. 굳이 푸쉬킨의 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화려한 가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동안 공부해야할 논고 때문에 뉴스와 즐겨듣던 음악을 멀리했는데, 처음엔 답답했지만 고요한 마음으로 적응되니 그 것 또한 괜찮은 일이었고 이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공부이지만 그것조차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일상이지만 하루의 아침은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어쩌다 시간에 좇기더라도 그것마져 재미로보면 웃을일들이죠. 하루의 시작,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의 시선, 그렇게 치유에서 활력의 시간 이동으로 다가가면서 기억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그 상처를 아는건데 세상살이 내가 아닌 것도 분명 있지만, 그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더 많은 시절이 남아 있는데, 어둔밤은 어둔 것이 서로 기억하고 보듬어 주지만 동질감의 세계에선 이질감이 배타되는 것. 하여, 덧없는 세상살이를 넘나드는데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어도 위대함이 아닐까요

흉내낼 수 없는 가없는 삶의 굴레에서 지금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설움아닌 설움에서 정녕 무엇을 추구하는지.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들을 외면 해보지만 패배의 쓴 맛도 잠시 잊은 채 두레패 상모돌리듯 떠돌이 별을 그리워 하는건, 깊게 함몰한 구덩이는 피하고 살아가기에 평탄하게 펼쳐진 길 아니지만 견뎌야겠지요.

운명이 있다는 것, 용솟음치는 삶이라해도 쉼표가 필요한데, 낙엽 떨어지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흠짓 놀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 너른 감잎 눈부시게 푸르렀던 일이 언제 였던가. 식은 석양같은 까치밥만 매달린 날 어느새 땅을 향해 하나 둘 떨어져 지구의 자전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습니다.

현실은 왜이렇게 냉정할까요. 매스미디어의 힘은 사람의 심성을 거칠고 우악스럽게 만드는건지. 목가적인 우리 고장에 갑자기 사람이 넘치지만 주는 인정과 받는 인정이 넘치면 좋을텐데, 그것조차 우리 인간스러움이 하는 일이라지만 잘 익은 홍시 하나 찔레꽃 덤풀에 떨어져 정신 번쩍 들게하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을 깨달았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픈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 상처의 치유를 버리고나면 또 새살 돋듯이 차곡차곡 옹골지게 일어서는 것인데, 움직이는 것 보다는 고요한 느낌으로 살아내는, 즐거움 보다는 슬픔이 많았던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도, 하지만 또 다르게 시작하는 것은 많은 아픔인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도 명맥은 아스라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어진 삶, 그래도 고마움을 느끼며 견딜 수 밖에. 삶의 꼭짓점에 다다르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 큰 욕심도 없고 느린 걸음으로 그렇게 사는건데 무의미하게 살고싶진 않은 것이 지금의 마음입니다.

아직까지 바람이 불면 그 바람 피하지 않고 혹독하게 훈련하면서 이겨내는 연습을 했는데, 살아보니 영원히 깨지지 않을것만 같은 사랑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은, 가혹 그 자체였고, 이젠 흘릴 눈물도 쏟아낼 기운도 없지만 이 가을, 다른 방법없이 또 견디는 수 밖에 아픈 상처는 기억속에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 상처 지나고나면 새살 돋듯 천천히 일어서야겠지요.

내가 걸어온 길, 혹시 그 길을 더럽히진 않았는지, 닦을 수는 없겠지만 반성의 시간은 있어야겠지요. 붉게 물든 낙엽 힘없이 떨어질지라도, 서럽게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양분의 흙이 되기에...

클래식 음악계에는 많은 스타 음악가가 존재합니다. 피아니스트, 바이올리스트, 그리고 성악가 등 그러나 음악가 중 최고의 스타, 스타 중의 스타는 아무래도 지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 지휘자들은 지휘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는 동시에 예술감독권을 쥐게 되는데, 예술감독권이란 무엇인가? 연주자들은 세계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함으로서, 성악가들은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에서 자신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과시함으로써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연주자와 성악가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는거죠. 이렇듯 협연자 선정, 오페라 배역 결정과 같은 사안을 처리하는 배후권력자, 그가 바로 예술감독이며, 예술감독은 항상 지휘자였습니다.

오늘 아침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지휘자이며 감독이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 지휘한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고즈넉한 10월의 마지막, 몇일동안 밀린 수업에 지친 몸을 다독이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편안한 시간인데, 혼돈의 삶에 한참동안 헤쳐나오지 못했던 무수한 시간들, 돌이켜보면 앞만보고 달려왔지만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갖으려 합니다.

기억해 보면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외쳐 보았지만 진정 자유와 민주화는 이루어 졌는가. 청년시절 민주화운동의 물결속에서 외침으로 살았던 시절들, 후회는 없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을 이해 하실지. 충만하지 못했던 삶의 기억이지만 그 땐 내게 최선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또 사랑하고 내면을 건강하게 키우면서 가시덤풀을 헤쳐 갔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죠. 하긴, 그게 인생살이 인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왜 나라고 편한 길을 택할줄 몰랐을까요. 하지만 아직도 견디는 건 ‘양심’ 이라는 두 들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우면서도 아린 것을 어찌합니까.

이 가을 초엽은 누가 뭐라고해도 국화입니다. 국화는 가을의 대표적인 상징인데, 예쁘지도 않은 어느 여인이 국화 말린 것이라면서 작은 통 선물하더군요. 누가 뭐라고 했나요. 그리곤 입차 한 통까지. 아직 물 끓여 보진 못했지만 행해 보렵니다. 때론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냥 눈물이 흐를 땐 다른 말은 필요없는거죠. 물론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이 모든게 낙엽지는 가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글 적으면서도 내겐 정말 가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나 아닌 또다른 세상이 기다리는데 우린 그 것을 좇아서 가는게 아닐까요.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 그 건 어찌보면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 하는 것, 물론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눈에 아른 거리는 것은 존중이며 사랑이 아닐까요. 제게 어느 선배의 충언은 ‘현실을 직시하라’였습니다.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 것을 부정한다면 아픔이 다가오는건데, 다시 존중해야 겠지요. 사실 현실은 냉정합니다.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겐 거짓없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면 이율배반적인 것일까요. 어떨 땐 문장도 길어져 아프다 못해 속상함입니다. 이 모든게 가을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공감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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