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날 시장 한구석 모퉁이에서 작은 싹으로 나온 너를 처음 만났네, 이파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귀여운건지, 단돈 천원으로 내가 너를 데려와 고운 마음으로 땅속에 심었더니 튼실한 알뿌리로 꽁꽁 숨어 지내다가, 파초처럼 넓다란 이파리로 나타나 알도 아닌 것이 신기하게 드러나는데, 네 모습은 무한하게 푸르기만 하여라.

토란, 누가 이것을 토란이라 말했던가. 알도 아니고 그저 뿌리 식물이거늘, 우린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것이 토란, 알토란이었다 말해보지만 먹기 위한것 보다도 그 모습 신비롭기에 내 작은 생각으로 토란을 말해보는거지.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많은 시절에도 가끔은 무엇을 먹어야하나 하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하긴 각자의 입맛이 다르니 걱정아닌 걱정인데, 조금만 눈돌려보면 입맛 당기는 음식이 왜 없겠는가. 여러가지 음식을 식당에 가서 먹으면 걱정거리는 없겠지만, 식당에서 준비하지 못하는 음식을 대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식당에서 준비하지 못하는 음식이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있다고 답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토란 음식인데, 쉽게 다가갈 수 없고 음식으로 만들기도 어렵기에 우린 그 것을 멀리하지 않았을까

 

연잎처럼 보이지만 밭에서 자라는 신비로운 식물을 우린 토란(土卵)이라 부른다. 음식과 약용으로도 쓰이는 것을 추징금 부과로 아들의 구속이 임박하자 부정적 언사로 변모시켰던 ‘알토란 같은 내 돈 200억’ 이라고 말했던 이순자씨가 기억되는데, 토란은 송편만큼이나 추석 하면 떠오르는 맛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미끈미끈 하고 약간은 물컹한 토란이 별로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제대로 토란 맛을 알게 되었던 건데,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 이제 내가 먼저 토란국을 챙기게 데는데 이게 조리하기엔 손이 많이가고 쉽지 않다.

 

어원에서 생각해보면 토란은 흙에서 나온 알이라는 이름 의미처럼 작은 달걀 모양이다. 다른 말로는 토련(土蓮)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토란의 잎이 연잎처럼 넓게 퍼졌기 때문이었던거다. 조선 헌종때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8월령에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 신도주 올벼송편 박나물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먹세” 라는 구절이 나온걸 보면 오래전부터 토란국을 추석 절식(節食)으로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엔 토란은 식량뿐아나라 약(藥)으로도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 나라에서 토란이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은 고려 때인 1236년 쓰인 의약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인데, 한방에서는 토란이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胃)와 장(腸)을 원활하게 운동시켜 준다고 한다. 토란은 누가 뭐래도 추석 즈음이 제철로 가장 많이 나고 맛도 그만이다. 토란국을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무 대신 토란 알뿌리와 쇠고기, 다시마, 구운두부를 넣고 끓인 맑은 장국으로 주로 먹는데, 남도지방에서는 들깨즙을 듬뿍 넣어 고소하고 진하게 끓여 먹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즐겨먹는 음식은 아니다.

 

국을 끓일 때 토란은 쌀뜨물이나 소금물에 데쳐낸 다음 사용하는데, 특유의 미끈거림을 줄이고 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토란을 자르면 나오는 끈적한 점액질은 갈락탄(galactan)이라는 당질로 장의 점막을 보호해 소화기능을 강화하고 해독 작용을 하는거다. 또 한가지는 추석에는 아무래도 과식하고 배탈나기 쉬운데, 소화를 돕고 식중독을 예방하는 토란국을 먹어 속을 편하게 해주려던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린 맛은 토란에 든 수산칼슘 때문인데, 삶거나 데치면 물에 녹아 없어진다. 토란은 냉장고보단 상온에 보관하는 편이 훨씬 좋은데, 그 것은 차고 습한 냉장고에 넣어두면 상하거나 썩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흙이 묻은채로 신문지에 싸서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어두운 곳에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토란이라고 하면 우린 알뿌리만 알고 토란국이 제일 잘 알려져 있지만, 잎이나 줄기는 나물로 무치거나 육개장을 만들 때 넣으면 정말 맛있다. 알뿌리는 국뿐 아니라 조림이나 구이, 죽, 튀김, 장아찌, 따위로 먹어도 맛있는데, 토란 튀김은 원래 사찰음식이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 토란 튀김에 감자가루와 밀가루, 물을 1대1대 1.5로 섞고 소금을 조금 넣어 간한 튀김옷을 입힌 섭씨 180도 기름에 튀겨내면 된다. 토란, 맑게 끓인 토란국이 생각난다면 지금 주저말고 시장에 가야한다. 먹고 싶은데 뭣때문에 망설이나. 맛있으면 그만인데.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고 아침과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느낌인데, 가을의 들머리에서 지치고 무거웠던 몸을 추스르기엔 내가 생각하기에는 토란 음식이 제격일 것 같다. 그것은 값이 저렴하고 영양 면에서 크게 이로움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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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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