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속을 걷다」나는 지금 삼지내 마을을 걷고 있다. 켜켜이 시간이 쌓인 돌담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데, 돌담에는 호박잎과 담쟁이가 무성하고 도랑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담을 따라 흐른다. 창평면의 삼지내 마을은 500년 역사의 창평 고씨 집성촌인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고경명 장군의 후손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등 1900년대 초 건축된 한옥 20여 채가 모여 있어 세월이 무색하다고나 할까. 창평면은 한때 천석꾼이 600여 호에 이를 정도로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여느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한옥으로 새로 지은 창평면사무소 앞에 늘어선 오래된 느티나무가 세월을 말해주듯 고아하다.

삼지내 마을은 2007년 국제적으로 인증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삼지내마을 돌담이“화강석 둥근 돌을 사용하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된 전통 토석담 구조로 가치가 높다”고 해서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돌담길을 걷다보면 이곳이 왜 슬로시티로 지정됐는지 짐작하게 된다. 생활공방과 약초 밥상을 차려내는 식당도 있으며, 효소 체험장과 야생화 전시관도 있다. 빙빙 돌아가는 삼지내 마을의 돌담을 따라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걷는데, 매미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담 너머에는 옮겨 심은 이름모를 야생화가 환하고, 그 꽃들 사이를 나비가 지루한 듯 옮겨 다니는데, 땀이라도 식힐 겸, 체면 불구하고 효소명인의 집 마루에 앉았다가 내처 팔베개를 하고 누워버렸다. 일상생활에 피곤한 적이 많았구나. 인생에는 훨씬 귀하고 가치있는 일이 많은데. 이런 생각이 스쳤던 것도 같다. 가령, 대숲에 머무는 바람소리를 듣는 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지금처럼 팔베개를 하고 누워 속절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탐닉하는 일. 그런 일 말이다.

 

[마치는 글]

 

대나무 숲 바람이 일어 옷깃을 헤집고 더운 기운을 몰아낸다. 「죽림한풍(竹林寒風)」그러자 줄줄이 나란하던 대줄기들도 결 고운 파문이 이는데, 스삭대는 댓잎들이 요동을 친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상념들과 갈등으로 메말랐던 체액이 단숨에 솟는 듯 손끝까지 전해지고, 혼자만의 뿌듯함인가. 어금니로 다짐이 서는데, 대숲의 기(氣)는 바람이 되어 대통을 흔들고 내 정신을 일깨웠다.

「소쇄원」,「식영정」,「명옥헌」,「송강정」을 다녀와서「죽녹원」에 들어서는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에 전념하며 학문에만 힘쓰던, 유유자적 세상 시름 피하여 원림(園林)을 만들고 시나 읊조리는 모습이 선비였을까? 그들이 노래한 시가(詩歌)엔 냉철한 사색(思索)의 칼날 같은 지조(志操)가 있었고, 그들의 정신엔 폭포수로 심신을 단련하듯 대숲의 찬 기운이 있었다.

대숲을 스치운 바람은 차다.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대숲을 지나온 바람은 차다. 생각이 번뜩이고 판단이 냉철한 왠지 대숲에선 장난기가 가라앉고 진지함에 사뭇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는데, 바람의 성질이 본래 흔들고 움직이는 것이지만, 사방이 스삭대는 아우성과 줄을 타듯 흘러내리는 살이 돋는 한풍(寒風) 속에서도 오히려 대숲의 소리와 바람이 새로이 우리를 단련시키는 듯한데, 신념을 일깨우고 의지를 움직이게 한다.

송강 정철 선생이 <성산별곡>에서「식영정」주인을 부르며 ‘…인간 세상 좋은 일 많건마는 /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하였다. 내 선대 조상인 「석천 림억령(石川 林憶齡 1496~1568)」이‘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로「식영정」이라 이름하여“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 한 것 아니라 시원하게 바람 타고 자연 조화와 함께 어울리며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니…”하였다. 오늘 나는 여유로움과 함께 초연함이 선비의 멀리 둔 시선에 묻어나 쉬고 있는 그림자가 사라진 게 아님을 선비 정신에서 배운다.

 

※ 식영정(息影亭)은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뒤꼍에 이르는 공간에 적막한 그림자가 깃드는데, 식영정 마루턱에 올라서면 바람도 옛 운율로 불고 냇물도 푸른 글씨가 되어 흐른다. 한국시가문학의 산실로서 2009년 9월 18일 국가문화재 명승 제57호로 지정되었고, 식영정의 주인 석천 림억령은 당시 조선 제일의 시인으로 이곳을 무대로 400여 수의 시와 더불어「식영정 20영」을 창작하였다.

석천 선생의 제자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은 선생의「식영정 20영」을 차운한 시를 남겼는데, 이로 인해 이들을 가리켜 ‘식영정 4선’이라 부르고 있으며, 특히 정철은「식영정 20영」을 모본으로 한「성산별곡」등 80여 편의 시가를 지어 국문가사의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정사룡, 송순, 이황, 김인후, 양응정, 박순, 기대승, 이이, 송익필, 박광훈 등의 국중시호들은 림억령과 교류하면서 계산풍류(溪山風流)를 일으킴으로써 무등산 일대에 시가문화권이 형성되었는데,「식영정」을 대표로 하는 호남의 시가문화는 한국 양대 지방학의 하나를 이룸과 동시에 예향 광주와 담양과는 뗄 수 없는 근본이자 이곳이 아시아 문화 중심도시로 지정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 담양의 현존 누정은 38개소인데, 6곳을 정하고 답사하기로 하였다. 이번 답사에 자료를 제공해 준 담양문화원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길잡이가 되어 「명옥헌」, 담양향교,「식영정」,「소쇄원」, 무월마을,「면앙정」,「송강정」,「모현관」을 안내해준 초아 임은실 선생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선비와 대나무 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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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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