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그림을 배울 때, 어릴 적 나의 그런 인연 때문인지 사군자 중에서도 군자 중의 군자라 일컬어지는 대나무를 무던히도 많이 그렸고, 그때 나는 대나무 몇 잎을 그리고도 대밭을 연상하는 울림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대나무는 지조, 기개, 기상, 의리 등 마음을 올곧게 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문인 묵객의 마음의 여유, 그리고 동양 사상인 유(儒), 불(佛), 선(禪) 정신의 정수를 대나무는 잘 갈무리하고 동양인의 가슴에 등불인 듯 교훈성을 담고 있어 애상되고 그려져 오며 이천년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묵죽도이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의 묵죽시이다.

 

빽빽하고 가지런한 푸른 대나무

유월인데 창 앞에는 눈 내린 듯 싸늘하구나 잎 흔들리는 소리 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데 맑은 소리가 숲속 가득 함께 함이 좋아라

대나무는 본시 하늘을 찌르는 기상도 있지만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부드러움도 있다. 댓잎 소리를 내며 늘 깨어있는 맑은 정신 속에서 참됨을 이루는 대나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대숲 맑은 담양골 잘 정돈된(?) 대밭 길을 걸으며 그 당당한 위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냄새, 바람결에 부딪히는 댓잎새 소리가 마음을 씻어내던 답사의 묘미가 또 그립다. 대나무의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싸고 드는 감동을 느끼며 행복해했던, 그곳에 가보면 누군들 그러하지 않으리…

담양 답사의 끝맺음으로 시 세 수 지어 올린다.

竹 : 1

대쪽같은 삶이면 누가 인정해줄까 심지 곧다 말해도 결국 생각의 차이일 뿐 냉정하게 대숲을 바라보면 차가움인데 바람불어와 휠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고 그 바람 속에서도 자존을 지키는 것인지 푸르름이 전부일까 속은 텅 비어 있어도 스산한 바람지나 다가온 품격은 여전한데 대줄기 갈라지면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이던가

비스듬히 잘라내면 날선 죽창이 되어 썩고 병든 생각도 떨쳐낼 수 있지만 파리한 댓잎 따내 동치미 항아리에 넣으면 청아하고 새콤한 어머니 손맛이 우러나는데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희한하기만 하여라

사람이 죽어서는 대발아래 누워 떠나고 통곡으로 대지팡이 짚고 고개숙이는 것도 결국은 대와 사람이 한통속인데 한평생 푸르게 살아가다 꽃 피워내고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순결이어라 대나무 줄기잘라 순한 털끝 함께 묶어 먹물 찍어 한지에 일필휘지 옮겨내는 것은 대(竹)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竹 : 2

대숲에 들어가 가만히 기억하면 사철 푸르를 것 같지만 또다름을 느낀다

겨울보낸 댓잎끝 애처롭게 갈라져 있지만 새이파리 봄날이면 푸르게 돋아나며 여름엔 왕성한 가지를 가져다준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가을엔 진중해지고 다시 겨울이면 아리지만 숨고르는데 자연의 위대함과 대숲의 과정이 다르지 않다

모진 바람에 휠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고 꿋꿋이 견디는 그 과정 눈물겹지 않은가 미약한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픈 상처만 기억하는 인간 군상의 세계

대숲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간다는 것은 행간의 비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견고하다는 것과 대쪽같다고 말할 때 우린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숲엔 바람불지 않아도 미세한 떨림이 있고 곧은 절개와 지조가 부드러움을 품은 채 서로 부딪치면서도 절제와 양보가 있으며 사시사철 배려와 겸허함이 배어 숨쉬는 오호라 변하지 않는 모습의 그 숭고함이여

 

3. 竹 예찬론(禮讚論)

그의 싹이 뾰족하게 돋아 싱싱하게 나올 때면 마디는 촘촘하여 미끈하게 살이 올라 차오르고 정연한 줄을 지어서 늘어서는데 큰 것 작은 것 먼저 나온 것 뒤에 나온 것들이 질서 있게 차례를 이루고 있고 그러다 대매(玳瑁)같은 껍질이 단단해지고 그 줄기가 마치 옥(玉)으로 만든 기둥 같은데 자라면서 분가루는 없어지고 흰마디는 비로소 뚜렷해진다

이때부터 푸른 연기(煙氣)는 흩어지지 않고 시원한 바람소리는 절로 나며 짙푸른 그늘과 달을 희롱하는 그림자

그러나 차갑고도 시원한 모습은 눈속에 덮여 오히려 더 푸르지 않던가 봄부터 그 해가 기우는 섣달그믐까지 마디가 얼 정도로 추워도 그 잎이 떨어지지 않으며 쇠를 녹일만한 더위 속에서도 그 잎이 마르지 않고 늙어갈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은 일생 동안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의 힘이 점점 더해가는 것에 비길 수 있고 그의 속이 빈 것으로 사람의 성품이 공허한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곧음으로 사람의 실상을 볼 수 있으며 그의 뿌리가 용(龍)으로 변하는 것은 능히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데에 비유할만하며 그의 열매로 봉(鳳)을 먹이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길이 된다

강하면서도 강하지 않고 연하면서도 연하지 않은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이를 숭상하며 군자(君子)는 그를 본받으려 한다

시절(時節)에 따라 그 뜻을 바꾸지 않는 그의 지조는 곧고 굳고 정갈함 때문이리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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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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