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대나무]

 

대나무는 왜 사람들이 좋아할까. 죽림산책(竹林散策)의 묘미(妙味)는 아무래도 시각(視覺)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이곳에 들어서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것 같은 또 다른 공간, 바로 집합(集合)의 미(美)다. 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정렬된 질서에서 오는 아름다움. 가로와 세로의 정교한 질서는 리듬을 타고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나를 황홀하게 한다. 반복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단조로움이 있는 반면 그 단조로움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곳에서 대조(對照)와 반복(反復), 그리고 변형(變形)을 통해 전체적으로 정돈되고 통일된 분위기를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

대숲에선 회화(繪畵)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제미(節制美)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데, 우리 앞에 펼쳐내는 아름다움의 경지는 이렇듯 담백하고 찬란하다. 그림에 담는다면 공간과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으며,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은 캔버스를 벗어나 더 넓은 공간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려는 느낌을 제공할 것이다. 집합의 미가 만드는 증식(增殖)의 논리는 종내 화면이라는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게 하면서 연속으로서의 공간에 이르도록 이끌어 색의 대비(對比)나 색의 유사(類似)를 통해 공간의 깊이를 더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형태의 반복은 우선 시각적(視覺的)인 면에서 화면에 리듬감 또는 연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정지된 화면에 시간적 요소를 개입시킨다. 동시에 화면이 외부의 공간으로 무한히 지속될 것 같은 확장 효과를 가져 오는데, 반복적 형태는 화면의 표면을 따라 시각을 이동하게 하여 그림의 평면성을 주지시키는 역할도 하며, 한편으론 심리적, 정신적인 면에서는 제작자나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적, 시각적 반복 행위를 통해 명상(瞑想) 또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접근하게 한다.

그래서 미술평론가 고유섭 선생이 한국 고미술의 특색을 ‘무기교의 기교’,‘무계획의 계획’,‘비정제성’,‘무관심성’,‘구수한 큰 맛’이라고 하였는데,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도 역시 계획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 무기교의 기교라 할 수 있으며, 자연이나 물질에 순응하며 규율에 맞는 운동을 함으로써 동시에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모노크롬에서 보여주는 무목적인 반복 작업 과정의 무작위(無作爲)성은 결국 자연이나 물질에 순응하며 일체의 것을 자연에 맡기려는 작가의 세계관이 함께 함을 느낀다.

이처럼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는 우리 민족의 무위자연(無爲自然)적인 정신성을 지닌 조형 형식으로, 합리주의적 조형 사고의 소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으로 우리의 잠재된 정서를 표출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의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회화 언어가 자연의 순리와 이법(理法)을 지향하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미니멀 아트에서의 사유(思惟)의 개념에서도 도식적이고 체계적인 정반합(正反合)에 따른 종합으로서의 사유가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독특하고도 전형적인 개념에서 배어 나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 대숲에서 보는 집합의 미와 절제의 미에서 얻어진 산물일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 대숲에서뿐이겠는가. 무엇이든 무리지고 군락(群落)을 이룰 때 거기엔 조형적이고 회화적인 맛과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남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정(情)이 느껴지며, 풍요와 여유가 느껴지는 곳. 오늘 한 점 구름이 되어 멋과 정이 서려있는 남도 답사 셋째 날, 조선 중종때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져, 많은 선비들이 만나 교류하던「소쇄원」김성원이 지은 정자로,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이 머물며 선비들과 친분을 나누던 「식영정」그리고 담백하고 편안한 정통 정원으로 배롱나무 풍경이 일품인「명옥헌」이런 곳들을 돌아보는 가슴에 아련한 감정이 부풀어 오른다. 백두산에서 보았던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과 천지의 웅장한 신비로움이 그 자체로 한 편의 대하드라마라면, 이곳 남도에서 보는 소박함은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한 편의 시(詩)와 같다.

대나무의 변함없는 청절한 자태와 그 정취를 지조 있는 선비 묵객들은 사랑했다. 늘 푸르고 곧으며 강인한 줄기를 가진 대나무는 그래서 충신열사와 열녀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하였는데, 대나무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수묵화의 기법과 밀착되어 문인사대부들의 화폭으로 발달시킨 사람은 중국 송나라 소동파(蘇東波)와 문동(文同)이었으며, 특히 문동은 묵죽화(墨竹畵) 기법을 창조하였다.

우리나라 묵죽화는 고려 때부터 중국 송·원대의 정형화된 묵죽화법의 영향 아래 발전해 왔으며,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더욱이 유교를 국시로 삼아 문인들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시대여서 묵죽화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발전했고, 이것을 증빙하는 것으로는 화원 화가를 뽑을 때 묵죽을 가장 중요시한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이후 묵죽화는 그때그때의 미의식을 대변하여 양식적인 변화를 뚜렷이 보인다.

조선시대의 묵죽화가로서 고전적인 전형을 완성한 이정(李霆), 조선 후기 개성주의를 표방한 문인화가들, 근대 묵죽화의 문을 연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민족의 현실감과 기개를 담은 민영익(閔泳翊)과 김진우(金振宇), 그리고 파격적인 현대화풍으로 소화한 고암 이응노(李應魯) 등으로 전통이 이어진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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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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